2013년 9월 12일 목요일

일루미나티에 맞선 JFK

일루미나티에 맞선 JFK


<제 35대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

생각할수록 아까운 것은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입니다. 만약 그가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링컨처럼 재선이 되어 미국을 넘어 세계를 위해서 역사의 대업을 이루어 놓았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케네디는 진정 멋스러운 인간이었습니다. 그의 몸에서는 젊음의 향기가 풍겼으며 비전과 꿈이 느껴졌지요. 그는 명쾌한 열변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몬타나는 요즘에도 그의 대통령 취임 연설을 돌려보곤 합니다.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극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세계의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베풀 것인지 묻지 말고, 우리 모두가 손잡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들을 때마다 마음 속에 뜨거운 이상의 정열을 느끼게 하는 그야말로 명연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케네디가 가장 존경하고 숭배한 인물은 바로 링컨이었습니다. 그는 링컨과 같은 위대한 대통령이 되려고 결심하였으므로, 링컨은 그의 이상적 본보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케네디도 링컨처럼 비장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것도 같은 세력에게 말입니다.


화폐전쟁의 저자 쑨훙빙은 링컨과 케네디가 미국을 배후에서 지배하려는 국제금융재벌가들, 즉 로스차일드가와 록펠러가의 연합 채인 일루미나티의 손에 암살당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쑨훙빙의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주당원이었던 케네디는 1960년 미국 대선에서 아이젠하워 정부 부통령이었던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을 꺾고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절에도 이미 미국은 막후의 권력자들이 배후에서 지배하고 있었지요. 당시 혁신적인 사상가 버크민스터 풀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맡은 역할보다 더 애처로운 건 없을 것이다. 권력이 사실상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케네디 행정부의 특별자문이었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도 훗날 "외교 정책은 여전히 CFR인사들의 수중에 있었다."라고 밝히기도 하였지요.
이처럼 CFR 회원들이 미국정부의 인사들로 쫙 포진되어 있었던 탓에 케네디 대통령은 임기초부터 기를 펼 수가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그 문제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불만을 드러냈겠습니까. 
"새로운 인물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이처럼 케네디는 전임자와는 달리 CFR에 불만을 드러냈고,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케네디는 미국 대통령의 고유의 권한을 찾기 위해서 1963년 6월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상대를 건드리고 맙니다. CFR을 넘어 FRB에 채찍을 휘두른 것이지요. 케네디는 결정적인 조치를 취했습니다. 40억 달러 상당의 미국 국채를 FRB가 아니라 재무부를 통해 발행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라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이 조치가 미국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것을 제 독자 여러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한 음모론 저자는 이를 두고 "케네디는 헌법으로 돌아가, FRB 은행들에게 이자를 지불하지 않으면 치솟는 국가 부채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확실히 판단을 내렸다. FRB는 종이돈을 찍어내 그것을 정부에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어쨌든 케네디의 이러한 조취는 <포천>지 편집장 찰스 머피, 뉴욕 주지사 넥슨 록펠러, 세계의 실질적인 왕 데이비드 록펠러, <월스트리트 저널> 편집자들로부터 공개적으로 공격당했습니다. 케네디 행정부의 더글러스 딜런 재무부 장관(CFR 회원)도 이 정책에 대한 데이비드 록펠러의 반대 입장에 동의하는 목소리를 냈으니 케네디는 참으로 외로운 대통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케네디는 이로 인해서 자신의 행정부 내 고위 인사들과 전면적으로 맞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5개월 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총성이 울립니다. 케네디의 대통력직은 허무하게 막을 내리게 되지요. 
참으로 허탈한 결말이 아닐 수 없는데요. 케네디의 암살에 관한 정황은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케네디 암살 연구자들은 미국의 실제 지배세력에 대한 케네디의 반대 입장이, 아직까지도 해명되지 않은 그의 죽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암살 피의자 리 하비 오즈월드의 아내가 1994년 작가 A.J. 웨버먼에 게 한 말은 주목해야 합니다.
"케네디 암살의 해답은 FRB와 관계가 있다. 이 문제를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제임스 앵글튼(CIA 간부)와 CIA 자체만 비난해선 안 된다. 그건 같은 손에 달려 있는 손가락 하나일 뿐이다. 자금을 공급한 자들은 CIA 위에 있다."
뿐만 아니라 케네디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을 캐내려는 조사를 CIA가 매번 방해하였다는 증거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 때문에 1997년에 스크립스 하워드 뉴스 서비스와 오하이오대학교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결과가 나왔을 것입니다.
★ 응답자의 51%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일부 정부 관료들이 직접 관여했다고 믿고 있다.
케네디 죽음의 배후에 일루미나티가 있다는 쑨훙빙의 주장,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봐야겠지요?

출저 : 몬타나

댓글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