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3일 수요일

알파고, 그다음은… 의료·법률·과학 등 인간이 찾을 수 없는 해법까지 도전한다

새로운 알파고엔…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전용 반도체칩 텐서 프로세싱 유닛 TPU
학습 속도·데이터 처리 수십 배 높아져 스스로 데이터 만들어내는 수준까지

"더 이상 바둑을 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박수 칠 때 떠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그렇다. 하지만 인터넷 기업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는 달랐다. 지난달 중국 저장성(浙江省) 우전(烏鎭)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에서 세계 최강의 프로 기사 커제 9단을 꺾은 알파고는 곧바로 바둑계 은퇴를 선언했다.


바둑계를 정복한 인공지능 알파고가 의료·법률·과학·금융 등 산업계 전반으로 활동 무대를 넓힌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는 “알파고를 이용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Getty Images Bank

처음부터 바둑은 알파고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파고의 아버지'인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바둑은 인공지능에 새로운 것을 가르치고, 시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을 뿐"이라며 "이제 알파고를 이용해 인류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알파고가 바둑 정복과 동시에 새로운 도전의 길에 나선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르치는 알파고

데이비드 실버 딥마인드 수석 과학자는 지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알파고는 업그레이드를 통해 바둑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범용(汎用) 인공지능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 서울에서 이세돌 9단과 대국한 알파고와 지난달 커제 9단과 겨룬 알파고는 전혀 다른 인공지능이라는 것이다.

가장 큰 차이는 문제를 배우고 답을 찾는 방식이다. 기존 알파고는 사람이 둔 바둑 기보(棋譜)를 모범 답안으로 삼아 연습하면서 실력을 쌓았다. 새 알파고는 추가로 기보를 배우지 않고 자기 자신과 수백만 건 이상의 대국을 거듭한 끝에 인간의 바둑에는 없던 신수(新手)를 찾아내는 경지에 도달했다. 알파고가 인간 대신 스스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허사비스는 "아예 인간의 기보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알파고 버전도 만들었고 만족할 만한 실력을 보여줬다"면서 "이 버전의 알파고에 대한 내용은 올해 국제학술지 논문으로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알파고가 이전과 달라진 비결은 두 가지이다. 먼저 알고리즘 개선이다. 실버 수석 과학자는 "단순히 컴퓨터의 용량을 늘리고 학습을 계속 시킨다고 해서 알파고의 성능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우리는 시행착오를 거쳐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추론하고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만들었다"고 했다. 새로운 알파고에는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전용 반도체 칩 '텐서 프로세싱 유닛(TPU·Tensor Processing Unit)'을 탑재했다. TPU를 장착하면서 알파고는 학습 속도와 데이터 처리 능력이 기존보다 수십 배 개선됐다. TPU는 CPU(중앙처리장치)와 GPU(그래픽처리장치)와 같은 기존 반도체 칩보다 월등히 많은 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하고 반복 학습할 수 있다.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실장은 "알고리즘을 바꾼 것이 알파고의 뇌 구조를 바꾼 것이라면 TPU는 알파고의 육체를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 대결에 사용했던 알파고는 1202개의 CPU와 176개의 GPU를 장착한 수퍼컴퓨터급 서버와 연결돼 작동했다. 하지만 새로운 알파고는 200개의 CPU와 4개의 TPU만 장착했다. 크기는 냉장고 정도로 줄었고, 에너지는 이전 버전의 10분의 1만 사용한다. 특히 TPU를 장착하면서 알파고는 바둑뿐 아니라 어떤 분야의 데이터든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 대회 '구글 IO'에서 "TPU를 구글 클라우드(서버 임대) 서비스에 도입해 기업과 개발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기업이든 구글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면 알파고 수준의 계산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의학·과학 분야에서 활약

전문가들은 스스로 배우기 시작한 알파고가 의료·법률·과학 연구·소재 개발·에너지 효율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식 실장은 "인공지능은 입력하는 데이터의 양과 질에 따라 성능이 달라진다는 것이 기존 상식이었다"면서 "하지만 새 알파고는 스스로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면서 이런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정보가 제한돼 있는 경우에도 여러 상황을 가정해보며 인간은 찾을 수 없는 해법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알파고는 이미 바둑 이외의 영역에서 맹활약하기 시작했다. 허사비스는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구글의 데이터센터에 알파고를 적용한 결과 전력 소모량을 40% 줄이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영국 국립보건서비스(NHS) 등과 함께 인공지능 진단 서비스도 시작했다. 이상 증세를 스마트폰에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3억 건의 의료 기록을 비롯한 수많은 정보를 토대로 진단을 한다. 서비스 시행을 앞두고 이뤄진 정확도 평가에서 의사는 73.5%, 인공지능은 90.2%를 기록했다. 진단 시간도 의사는 평균 3분 12초, 인공지능은 1분 7초였다. 알파고가 의료 정보를 기반으로 학습을 반복하면 인간 의사의 고정관념도 뛰어넘을 수 있다. 전혀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하면서 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가능성도 높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자율주행차가 실제 도로에서 겪을 수 있는 수많은 상황을 알파고가 만들어내 각각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하거나 지구온난화 같은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낼 수도 있다”면서 “실제 실험을 하지 않고도 특정 질환에 맞는 신약 후보 물질을 만들거나, 신소재를 설계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알파고는 2015년 처음 만들어진 뒤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며 불과 2년 만에 3000년 역사의 인간 바둑을 뛰어넘었다. 이런 인공지능이 여러 분야에 적용되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언젠가 인간을 지배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허사비스는 “알파고를 개발한 목적은 과학자, 의사, 간호사 등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을 돕고 인간이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인공지능을 만들려는 것”이라며 “알파고는 인간을 위한 도구이지,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알파고는 인간이 시킨 일만 잘하는 피조물(被造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박건형 기자]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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